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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출발] 노쇼핑/노옵션/노팁 충주/여주 힐링 당일 여행

09:00 출발
·
당일치기
·
출발지 서울

포함/불포함 사항

포함 사항
  • [관광] 관광지 입장료
  • [교통] 전용차량
  • [가이드/기사] 가이드 및 기사 경비
불포함 사항
  • [보험] 여행자 보험
  • [기타] 개인 여행 경비 및 매너팁
  • 개인 주류 및 음료수

특전사항

[안양 출발] 노쇼핑/노옵션/노팁 충주/여주 힐링 당일 여행

여행 일정

서울
09:00 출발
중앙탑 사적공원
09:00 ~ 10:30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중심의 시민공원, 중앙탑사적공원 _x000B_국보 제6호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은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흔히 중앙탑이라고 불립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9세기 중엽)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높이 14.5m의 유일한 7층 석탑입니다. _x000B_중앙탑 주변에는 조각공원이 만들어져 있으며, 넓은 잔디밭이 깔려있는데, “문화재와 호반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국내 조각가들의 작품 26점을 전시한 충북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입니다. _x000B_ 사적공원은 시민들의 공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 파고라와 조형물, 어린이들을 위한 간이 분수 및 산책로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탑공원 내에는 충주박물관 1관, 충주박물관 2관, 야외박물관, 야외음악당, 음악분수 1기, 중앙탑, 경기 운영소, 간이 분수, 파고라, 10여 개의 조형물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설을 바탕으로 중앙탑 사적공원은 충주 시민들의 쉼터와 어린이 학습 체험 장소가 자리잡았으며, 중앙탑공원 북쪽에 있는 충주조정지댐과 더불어 충주 시민의 위락 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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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박물관
10:30 ~ 12:00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을 모아 1986년 유물전시관으로 시작한 이래 충주시 가금면 중앙탑(국보 6호)주변으로 이전, 종합박물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_x000B__x000B_남한강과 중앙탑이 잘 어울리는 사적공원 내에 위치하여 제1관, 제2관과 야외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제 1관은 역사1·2실, 민속1·2실로 구분하여 불교미술품과 민속품 위주로 전시하였으며 특별전 등을 기획전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제 2관은 선사삼국실, 고려조선실, 충주항쟁실, 충주명현실 4실로 구분하여 충주의 역사를 이해 할 수 있게 설명하고, 야외는 중원문화권내에 흩어져 있던 석조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있습니다._x000B__x000B_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상설전시뿐아니라 각종 특별전을 개최하고, 중원문화권역에 대한 학술조사, 박물관전통문화학교, 어린이박물관학교 운영 등 여러 활동을 통하여 시민과 함께하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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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12:00 ~ 13:30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7월 9일 명승 제42호로 변경되었습니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입니다. 탄금대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하나인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_x000B__x000B_《삼국사기》에 보면,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悉王) 때의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습니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階古)·만덕(萬德)을 뽑아 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합니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습니다. 칠곡리 (지금의 칠금동), 금뇌리(지금의 금능리), 청금리(지금의 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지금까지 전합니다. _x000B_ 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때 무장 신립(申砬)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치른 전적지이기도 합니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입니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습니다. _x000B__x000B_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는 탄금대비를 비롯하여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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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13:30 ~ 15:00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습니다. _x000B__x000B_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_x000B__x000B_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 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_x000B__x000B_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_x000B__x000B_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極樂寶殿) 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산신당·육각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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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단배
15:00 ~ 16:30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입니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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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착
17:50 도착 · 87km · 약 1시간 20분
09:00 출발 · 당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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